<시가 흐르는 아침>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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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례 시인
기사입력 2023-11-13 [16:34]

  그믐달이 뜬 밤

  그물 같은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하늘이 어두워져요

  

  달빛 속의 검은 새는 밤을 가로질러요

 

  그물을 찢고 싶은데 다리가 후들거려요

  담을 살짝 넘어보려는데

  높은 담벼락 

 

  그물 같은 나뭇가지가 앞을 막아요

  나무가 자라고 싶을까요

 

  귀퉁이 헛발질에는 길이 많아요

 

  길은 어쩌면 매듭을 풀고 가는 길

 

  발소리 듣고 있으니

  앞으로 갈 것 같아요

  몸을 뻗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꼬리를 치켜세워 보아요

 


 

 

▲ 김두례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언젠가 큰애가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 떠있는` 어둠과 밝음이 있는 풍경에 눈길이 갔다. 늦은 저녁 귀가할 때에 비슷한 광경을 보았다.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 썼다 지우기를 여러 번. 화자는 고양이다. 먹잇감을 찾아 골목을 나서다가 사람들 발소리에 담벼락 뒤로 몸을 감춰야 한다. 곧 나가야 하는데 소리가 지나가지 않는다.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서 지켜보는데도 발이 멈춰있으니 나갈 수가 없다. 아예 모습을 감추고 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끼니를 찾아가는 길, 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밤이다.

 어두운 밤 길을 나서려면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사진 주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몇 번이고 퇴고해 보았다.

 

 

김두례

 

2019 《시와문화》 신인상 등단

시집 『바그다드 카페』 『드라이 플라워』

동서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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