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송정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
작약의 모습을 꼭 닮은 잎이 아랫부분에서 자라 나왔다. 작약의 새끼인 줄 알고 그냥 두었는데 며칠 보니 아무래도 작약은 아니다. 살기 위해 제 모습을 화분의 주인처럼 바꾼 잡초라 판단했다. 영리한 잡초라고 느꼈지만, 작약을 위해 제거되어야 했다. 풀들은 화초보다 생명력이 강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쑥 뽑아서 거름이라도 되라고 무심코 화분 위에 던져두었다. 며칠 후 잡초는 뽑힌 중간 마디에서 발이 새로 나 거미줄처럼 질긴 잔뿌리를 사방으로 폈다. 넓게 뻗어 탄탄한 발들이 작약의 줄기를 휘감았다. 단시간에 생존을 위해 사방 발을 내디디며 최선을 다한 흔적이다. 작약이 시들시들해진 이유다. 뿌리들의 줄기를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등산길에 본 소나무는 굵은 뿌리를 지하로만 뻗지 않고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등산화의 디딤돌이 되고 산짐승들 발롭이 할퀸다. 줄기와 가지와 잎을 위해 어디든 험한 길을 걸어 다니는 뿌리들이다. 실제로 워킹 팜이란 나무는 뿌리가 밖에 돌출되어 있어 영양분과 물이 있는 곳을 찾아 걸어 다닌다. 식물이 어찌 사람 만큼 지각이 없다 할 수 있으랴,
아들의 고등학교 때 일이 생각난다. 남편이 사업을 벌리기만 하고 수습을 할 줄 몰랐다. 불안했다. 부채 비율이 점점 높아가도 겁을 내지 않고 확장에만 정신을 쏟고 있어 제동을 걸 필요를 느꼈다. 간섭을 싫어하는 남편이 나의 말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부부싸움으로 크게 번졌다. 내가 친정에서 빌려온 돈도 꽤 컸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도 듣지 않고 독주하는 자세가 미웠다. 사업의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아내를 무시하는 자세가 싫었다. 냉전이 계속되었다.
고등학교 다니던 둘째 아들에게 제 아버지 말을 털어놓았다. 아들의 동조를 얻어 은근히 내 편이 되어 주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아들을 좋아하는 남편을 같이 설득하고 싶었다. 평소 딸보다 더 상냥하던 아들이 나의 예상과는 달리 반대를 했다.
- 엄마 아빠가 내 뿌리인데 내가 뿌리를 잡고 흔들 수 있겠습니까? 제발 엄마 아빠끼리 해결하고 나를 끌어들이지 마세요
아들의 맘만 다칠까, 싶어 그만두었다.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남편의 일방통행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불경기가 지속되고 아이엠에프가 오자 남편은 그제야 후회했다.
지금은 직장 관계로 서울 있는 아들의 안부 전화엔 언제나 제 아버지 걱정이 먼저다. 걸어 다니는 깊고 긴 뿌리, 아들의 촉수는 항상 공기의 파장을 감지하듯, 남편의 반경 안에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의 복사판 같은 아들을 보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뿌리들이라고 느낀다. 물론 남편만의 아들은 아니지만 성이 같은 우리 집 남자들은 거의 남편 위주다. 남편도 아들에게 헌신적인 것은 안다. 남편 그늘 안에서 밖의 신경을 안 쓰고 사는 나는 편하지만 아직도 가부장 시대 고루한 관념은 싫다. 외출 가서도 일정 시간을 지나면 전화로 재촉하고 가사의 분담은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다. 지금 세대들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이미 관념은 바꾸기 어렵고 이렇게 사는 방범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뽑힌 풀포기를 들고 나가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 거미줄처럼 질긴 생명으로 다시 초록으로 살아라, 기왕 태어났으니 살아야지 미안하다.
대구출생
시인시대등단
2021년 대구문화재단 경력 예술인 지원 수혜
대구문인협회회원, 서울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2021년 시집 『기린과 부츠』 천년의 시작 출간
이메일 thdwjd775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