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 에세이> 학춤 추는 화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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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시인 수필가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3-11-28 [16:33]

▲ 김영욱 시인 수필가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불 꺼진 무대 위로 휘영청 뜬 보름달빛이 밝다. 이내 피리소리가 안개를 타고 흘러 어둠 속으로 퍼진다. 홀연, 무대 양쪽 가장자리에서 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드는 두 마리의 학이 보인다. 머리 위가 붉은 것으로 보아, 화랑처럼 아름다운 단정학이다. 어느덧 조명마저 커다란 팔자를 그리며 아직 채 열지 않은 연꽃 두 송이를 맴돌더니,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부리로 꽃숭어리를 콕콕 쪼아댄다.    

 

 아주 오래 전, 처음 본 화랑의 후예들의 춤사위가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학의 거동이나 습성을 관찰해서 춤동작으로 형상화한 모방춤이지만, 역시나 학춤은 전신에 학의 탈을 쓰고 출 때야 비로소 신비로운 아취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물론 도포를 쓰고 갓을 쓴 선비들이 소맷자락을 너울너울 흔들며 춤추는 울산학춤이나 동래학춤도 정제미가 있어서 좋다. 하지만 춤꾼이 속세의 인간 모습을 선계의 상징인 학의 탈 안쪽에 감추고 나타나야만 제대로 주술적이고 제의적인 분위기까지 살아난다. 

 

 사실 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민족에게 존재하며 그 기원도 원시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인류는 제의에서 탈을 만들어 씀으로써 유한한 자신들의 한계를 탈의 이미지가 지니고 있는 초월성에 투사하여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새는 하늘과 땅의 세계를 매개할 뿐만 아니라, 하늘의 기운을 땅에 전달하는 동시에 속세를 벗어나 날아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이상을 지향하는 상징물이다. 더욱이 학은 신선을 상징하는 도교적 신앙과 결부되어 일찍이 삼국시대에 전래되었다. 

 

 학춤을 추기 위해 화랑들은 우선 청학과 백학 각각 한 마리의 몸 거죽으로 쓰일 대나무를 골라 길쭉하게 쪼갠 다음, 둥그렇게 말아 몸통을 만들고 그 거죽에는 하얀 종이를 바른 뒤 잘 마르길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학의 기다란 목을 부러지지 않게 대로 엮고, 기러기 깃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만든 날개를 몸통에서 쉬이 떨어지지 않도록 꿰매주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요샛말로 ‘브로맨스’를 키워온 이들은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않은 두 낭도를 두 송이의 연꽃 속에 각각 숨겨놓고 또 두 사람은 각자의 학의 탈을 쓰고 무대 위로 날아든다. 처음엔 서로 어깨를 끼고 돌며 희롱하듯 어깨를 떨며 뒷걸음치지만, 잠시 뒤엔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서면 나머지 한 마리는 뒤로 물러나는 척하며 점차로 연꽃 가까이 잔걸음으로 다가선다. 이렇게 주고받는 춤사위 중간 중간에는 날개를 뒤로 들어 올려 양 날개를 뻗치고는 마치 날아갈 듯하다가도  이내 외발사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이는 고개놀음과 꼬리 깃 부분을 흔드는 꾸밈사위 등의 동작 하나하나 학의 움직임을 모방했음은 물론이지만, 한 마리가 높게 날갯짓을 할 때 다른 한 마리가 몸을 낮춰 빙그르 도는 동작 등을 볼 때, 엄연히 음양의 조화를 이룬 구성이다. 짐작컨대, 풍류도가 유행했던 고대 왕국 신라에서 화랑은 산천경개 좋은 곳을 찾아 무술은 물론 정신수련도 병행하기 위해 이 학춤을 추었을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알고 보면, 그들이 췄던 이 춤이 단순한 풍류 놀음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되는데, 그 까닭은 서라벌 주변에 위치한 융변(戎邊, 지금의 울산)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융변산신’(戎邊山神, 계변천신설화로도 불림) 설화가 방증한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신라 52대 효공왕 5년(901), 신두산(지금의 학성)에 쌍학이 부처의 금신상을 물고 내려와 그곳에 주둔한 군인들에게 수록과 복록을 주었다는 것이다.

 

 화랑이 누구인가? 그들이 전 세계 역사 속에 등장하는 그 어느 집단보다 서로 간에 강한 동지애를 갖고 있었다는 점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모죽지랑가>나 <찬기파랑가> 등의 향가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자신 보다 동료를 더욱 귀하게 여기는 화랑 두 사람이 각각 청학과 백학이 되어 요샛말로 브로맨스를 향유하는 학춤 속에는 단순히 도교의 무의자연 사상뿐만이 아니라 연화장 세계를 동경하는 불교적 관념이 배어들었으니, 이는 신라 말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사찰학춤으로 스며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양산학춤의 뿌리가 된 양산 통도사의 사찰학춤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학의 탈을 쓰고 춤을 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화랑의 학춤과는 엄연히 다르다. 또한 학의 탈을 쓰고 추는 춤이 중국에 없는 것으로 볼 때, 화랑의 학춤은 고대의 토속신앙과 더불어 우리의 독자적인 춤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삼국사지』 악지 편에도 거문고 소리에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학을 타고 춤추는 신선이 그려져 있는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 벽화 등이 삼국시대부터 유래된 것임을 입증해주는 자료인 셈이다.  

 

 아쉽게도 내가 어린 시절에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잔치인 화랑제에서 학 탈을 쓰고 추는 학춤을 본 뒤로 그 어디에서도 다시 본 적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 문득 문득 그 춤이 내게 줬던 강렬한 이미지가 떠오를 때마다 어쩌다 전승이 소홀해졌는지 아쉽기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찮게 1872년에 진주목사 정현설이 쓴 『교방가요』에 수록된 진주교방학춤의 채색 삽화 속에서 연꽃 두 송이와 학 두 마리를 접하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책에는 춤사위까지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다만 여기서 또 다른 호기심이 생겼는데, 어째서 풍류도를 섬기던 화랑들의 학춤이 조선시대의 궁중학무인 ‘학연화대합설무’를 거쳐 경상남도 진주의 교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는지, 그 연혁이 몹시도 궁금하다. 화랑과 기생이라니? 그 상관관계를 이리저리 찾아보니, 신라 24대 진흥왕 때 활약하던 여무(女巫) 유녀화(遊女化)를 따르던 화랑 원화(源花), 혹은 국선에서 기생이 발생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석연치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선다. 

 

 요사이 화랑을 다루는 각양각색의 콘텐츠가 양산되고 있던데, 일부는 화랑이 화장을 하고 다녔다는 면을 지나치게 부각하고, 일부는 도를 넘는 브로맨스에 빠진 관계만을 집중 조명하고 있어, 저절로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내 유년의 기억 속의 화랑들의 춤, 이제 누군가는 학 탈을 쓰고 춤을 추던 화랑의 진면모를 제대로 밝혀야 한다. 내 피에 유유히 흐르고 있을 신라인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무형의 문화를 그 누구도 근거 불명의 상상력으로 함부로 왜곡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서울태생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인하대학교 한국문화콘텐츠 박사 수료 

2021년 시산맥 시 등단 

2023년 평사리문학대전 수필 대상 

2023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시조 당선

syl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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