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 논단> ‘의자’가 필요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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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기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3-12-04 [16:30]

▲ 홍철기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아이고, 조석으로 공기가 달라. 춥다, 추워. 여기 커피 한 잔 줘봐’

 

 정겨운 목소리로 아침마다 출근 도장을 찍어주시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군산시 외곽의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제일 많이 만나는 분이 이장님하고 어르신들입니다. 

 

 시골 어르신들의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억척스러울 것 같으면서도 부끄러움도 많고, 모르시는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세상 그 누구보다도 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세상 그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자녀들을 키워 낸 그 시간의 힘이 어느 성자의 가르침이나 의지에 못 할까 싶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바라는 제일의 덕목이 무엇일까요?

 

 취업 잘해서 결혼하고, 또 돈 잘 벌어서 성공하는 것.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하다 보면 또 그게 다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어르신이 모여있는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자녀들에게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게 싸우지 않고, 아프지 않고 사는 거라고들 합니다. 남 애태우지 않고, 도와가면서 살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합니다. 

 

 이걸 어렵게 이야기하면 나눔이고 배려고 사랑입니다. 이런 생각의 끝에서 만난 시가 있습니다. 바로 이정록 시인의 ‘의자’란 시입니다. 시 일부를 잠시 소개해봅니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시에서도 말합니다. 이 시는 병원에 다녀야 하는 게 일상인 늙은 어머니가 어느 선승의 화두처럼 아들에게 툭툭 던지듯 말하는 몇 마디가 다인 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를 보는 순간 공무원으로 현장에서 제일 많이 느끼는 생각이 담겨 있어서 놀랐습니다. 시 행마다 연마다 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어느 어머니인들 힘들고 어렵지 않은 인생을 살았겠습니까? 굳이 지나온 질곡의 역사를 말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치열한 산업발전 시기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 끝에서 만난 화두가 이 의자라는 시에 들어 있습니다.

 

 ‘의자’ 이 단어 하나가 가슴에 머뭅니다. 의자가 말하는 가르침은 비어있는 공간입니다. 그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닌 오롯이 타인을 위한 공간입니다.

 

 사회복지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사는 것도 이렇게 내 옆자리에 비어있는 공간 하나 마련해두면 어떠냐고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회복지 이론들과 실천의 덕목들을 열거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회복지는 ‘의자’다.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의자는 모든 것을 수용합니다. 채워져 있지만 빈 곳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것, 누군가 비어있는 곳에 앉을 때 완전해지는 것. 우리 사회복지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그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옆에 누군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주고, 때로는 우리가 의자가 되어줄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싸우지 말고, 풍경 좋은 곳에 의자 하나 내놓아 함께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복지국가가 있을까도 싶습니다.

 

 ‘의자’라는 말에는 들어 있는 의미들이 그 증거입니다. 굳이 열거해보자면 나눔, 배려, 이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의 답까지 말입니다.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식구’ 가족과는 같은 듯 다른 말입니다. 

 

 식구는 한 테두리 안에서 끼니를 함께 걱정하고 해결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처럼 혈연으로 법적으로 묶여 있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잠시만 주변을 둘러봅니다. 주위에 우리의 식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쪽방에 한 끼 식사를 걱정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엄동설한에 난방비가 부담되어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견디다 견디다 못해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작지만, 꼭 필요한 의자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게 사람이든, 정책이든, 시스템이든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쉬어갈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내어놓는 일. 그게 지금, 우리 사회가,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입니다. 

 


 

 

2012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17년 시와표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파프리카를 먹는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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