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 에세이> 질주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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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숙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3-12-06 [16:18]

▲ 민은숙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달리고 싶다. 어려서 액셀 한번 시원하게 지르지 못한 엔진이 쿨럭, 마른기침을 한다. 고스란히 세월을 받아낸 밑동에서는 버석버석한 낙엽 같은 잔해가 덜컥 떨어진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각, 동 입구에는 차들이 주차장을 꽉 메운다. 입주 초기에는 여유가 넘쳤던 공간들이 불어난 가족 계획 실패로 몸살을 앓는다. 언제부터인가 번쩍번쩍한 외제차들이 제 나라를 두고 제집인 양 가부좌를 틀고 있다.

 

 원주민인 나는 아파트와 갑장(甲長)인 자가용이 있다. 출퇴근만 이용하기에 연식에 비해 삼만 킬로미터라는 우스운 역사를 자랑한다. 먼 곳을 쏘다니지 않는 무심한 주인 만나 늘 허공만 응시한다. 주차장 밖 먼 산을 향해 뚫린 창살 없는 감옥살이라고나 할까. 소형차와 가까운 내 차를 사람들은 무심코 똥차라 칭한다. 모근이 허옇게 셌지만 어디든지 이동하는 데 문제는 없다. 날씬한 체형으로 주차가 수월해서 여간 고맙지 않다. 늦은 시각에 돌아오면 진가를 발휘한다. 덩치 큰 친구들이 직진과 후진을 하며 용을 쓸 때 잽싸게 빈자리를 꿰차는 순발력이 돋보인다.

 

 퍼져있는 일원들의 중심지에 주차하러 간다. 도로에서 갓 태어난 듯한 차들의 행진을 본다. 어디서 이런 차들이 숨었다 나오는 건가. 허풍 떨지 않는 실속 있는 애마를 당당하게 세운다. 각자 헤쳐모인 선후배는 다른 차로 이동하자고 한다. 고물차로 인식한 동행은 오늘도 한정된 경치만 감상할 듯하다. 후배가 농을 던진다. 돈 벌어 뭐 하냐면서 차 바꾸라는 거다. 얼굴이 붉어진다. 함께 노쇠한 듯 울적하다. 낯선 풍경에 동행이 한눈을 판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아직 수긍하고 싶지 않은 미련이 도사리고 있다. 어느새 속된 말로 고물이 되는 전환점에서 헤매고 있다. 돌아보면 찰나의 연속인 화소만 같다. 앞을 보아도 막연하다.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밀려온다. 성과는 비루하건만 연식만 오래 묵었다. 고물차란 멍에는 비단 후배만 주지 않는다. 분양한 견본 주택 주차장에 서면 비련의 주인공이다. 완전 무수리 취급이다. 길을 나서면 배려 받지 못하는 똥차란 말, 주인은 그 말에 반론을 펴지 않고 묵인한다. 고마운 내 이동 수단을 보면서 자화상을 본다. 방어한다고 상대를 피하려다 모서리에 긁혀도 군말이 없다. 상처받지 않고자 공격하지 않고 미리 방어 태세를 갖춘다.

 

 번지르르한 돌피보다 속이 꽉 찬 알곡이면 된다고 홀로 삭혔다. 어제가 오늘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동행도 그러하다. 내일의 질주를 꿈꾸며 얼마나 웅크리고 있었는가. 뒤로 미룬 꿈은 짐작보다 더 멀리 도망간다. 휴지 같은 별 볼 일 없는 이력이 혼잣말로 허공에서 흩어진다.

 

 고물 또는 퇴물이란 낱말의 물은 물건이란 뜻을 품는다. 곱상하지 않은 비웃음이 숨어있다. 중고가 된 차는 적나라하게 비바람과 맞섰기에 관절염이 생겼다. 쪼그려서 밑을 들여다보면 녹슨 티가 역력하다. 동안이라 칭찬받는 나 또한 가만히 보면 숨길 수 없는 상흔이 있다. 의술의 힘을 받지 않은 피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월의 풍화가 자욱하다. 가벼운 접촉 사고 한번 낸 적 없고 무사히 날 수송해 준 대견한 지기에게 연고를 정성껏 발라준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발목 보호대를 장만했다. 오랜 지기의 얼굴에 모처럼 광채가 난다. 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따라 흐른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한 해를 정답게 동행하리라.

 

 질주하고 싶은 본능은 달리는 말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또한 어찌 달리고 싶지 않을까. 눈금은 시속 이백 킬로미터까지 표시되어 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지 않을까. 고속도로에 쉽사리 들어서지 않는 의기소침한 주인 만나 기껏 해 봐야 백 킬로미터나 달려봤을까. 자신의 속력이 과연 시속 얼마인지 알기나 할까.

 

 이십 대는 질주하는 청춘이다. 현실이란 테두리에 갇혀 나는 정해진 동그라미 안에서만 무한 반복된 삶을 살았다. 그래서일까. 늘 머리 한구석이 시끄러웠다. 공상과 상상, 때로는 망상도 하면서 밤을 다독였다.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현실에 저당 잡힌 핑계 아닌 회계에 무릎을 꿇었다. 늘 오지 않은 내일을 기약했다. 다음은 어느새 수십 년이 지나 생의 반환점을 지나왔다.

 

 어린 날처럼 아끼고 재고 싶지 않다. 오늘의 소소한 행복을 내일로 이월하지 않을 것이다. 불끈 욕망이 떠오른다면 도덕이나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바로 행동하리라. 이십 때처럼 빠른 속도로 질주할 순 없겠다. 페이스에 맞추어 달려보자. 덜덜거리지만 어깨 살살 두드리면서 애마와 함께 뒤늦은 질주 본능을 깨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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