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서북미 문인협회>울산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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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수필가 워싱턴 주 시애틀 거주
기사입력 2024-02-14 [16:18]

▲ 이명숙 수필가 워싱턴 주 시애틀 거주  © 울산광역매일

 때는 1996년 6월이다. # 울산

 

 "울산은 처음이지, 당신~?!"

 

 내 등 뒤로 불쑥하니 볼멘소리처럼 들려왔다. 두 아들과 벅찬 감동의 '울산 앞으로' 여정에 남편이 던진 말이다. 나는 잠자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랬다. 난, 울산(광역시)는 초행이었다. 

 

 남편은 현대 OB맨이다. 80년대, 한국은 고도성장과 숨가쁜 산업화의 격동기였다.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산업의 특화 목적으로 대기업을 산업별로 나누는 바람이 불었다. 평생 직장으로 알았던 회사를 그 바람 탓에 휘둘려서 일터의 변천사를 적지 않게 겪었다. 

 

 남편 직장 배경은 자신감있게 주재원 가족으로 미국 생활에 바탕이 되었다. 

 

 96년 초여름, HD그룹 정회장님께서 해외지점장 가족 대상의 국내 초청은 대박 행사였다. 우리 네식구는 버스 유리창에 붙은 '미주지역' 글자를 확인하고 울산 시찰길에 올랐다. 두 아들은 아는 만큼 보이는 성장기 중학생이었다. 국내 산업 시찰의 메카인 울산과 역사 유적지의 경주까지 체험학습 예정이었다. 또한 아빠와 유대감을 강화할 3박4일 특별한 여행 길이었다.

 

 버스가 방어진 순환도로 들어서면서 부터 좌심방이 빠르게 뛰었다. 차창 밖은 산업화 풍경을 계속해서 담아냈다. 멀리 보이는 파란 바다 배경이 그림 속의 여백처럼 완벽한 조화였다. 자동차, 조선소등 입을 다물지 못할 역동적 현장을 보니, 나의 자부심은 너무도 당연했다. 대왕암을 마주보고 두 팔 벌린 조선소 거대한 크레인들이 위풍스럽게 보였다. 울산 이미지의 끝판왕인 초대형 골리앗을 배경으로 섰다. 나와 골리앗과 울산 하늘이 하나되는 순간을 담았다. 

 

 주말 부부로 삶은 겸허했고 기억은 깊었다.

 

 남편은 홀연히 '울산 총각'이 되어 떠났다. 서울에서 울산 본사로 1981년 새해 3일 전에 이사했다. 미국 피츠버그 철강 연수 6개월을 다녀와, 중공업 대리직일 때 우린 만나 결혼했다. 신혼의 단꿈은 두달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갑자기 닥친 일에 해머로 맞은 듯한 위기 국면이었다. 연희동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토박이로 살던 내겐 서울을 떠난다는게 마뜩하지 않았다. 더욱이 난, 화학교사로 맞벌이였다. 하지만 물러설 곳 없는 엄중한 현실 앞에 겸허하게 주말부부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 것 같아 불만스러웠다. 명분과 빈틈없는 논리는 쓸모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편한 진실은 강한 담금질로 자신과 싸우며 연마하기 시작했다. 외로움과 자존감이 부딪히는 충돌 에너지는 뜨겁고 심각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의 꾸준했던 주말행은 연민이 되어변화를 희망하게 됐다. 단련된 전환은 주말 부부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졌으며 평안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시간은 부부의 정(情)을 위한 숙성기간이었고, 울산은 질이 높은 촉매제였던 것이었다.

 

 나는 울산을 찾은 게 15년 만이었다.

 

 울산은 처음이지? 하며 볼멘소리가 내겐 찔림으로 들릴만 했다. 주말마다 남편의 상경은 어린 왕자와 여우의 기다림의 길들임 같았다. 1박2일 짧은 만남은 돌아간 후 남편의 존재를 더 크게 느꼈다. 나 혼자를 지켜낼 만큼의 심리적 안정도 찾아갔다. 쓸쓸했던 학교 출퇴근 길도 한 주간이 생기로 채워져갔다. 

 

 조선소 공장 정문 앞, 사원숙소의 울산살이 일화는 지금도 생생하다. 매주 말, 울산이 쏘아 올린 이야기는 동화처럼, 내가 알던 울산의 전부였다. 동료들은 새신랑이 왜, 새색시 두고 혼자서 왔냐며 빈정거렸단다. '울산 총각'으로 지내는 자기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포장마차 길거리 토스트로 아침 출근을 연다고 했다. 맞닥뜨린 현실에 순응하는 가장 (家長)의 모습에 짠한 연민을 느꼈다. 울산행을 계획했던 즈음에, 내 몸에는 이상 기운을 느꼈다. 입덧이란 선물 앞에 나의 울산행은 고스란히 묻혔다. 

 

 초기 시련은 잠깐이었으며 인내의 과정은 내재한 풍요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울산은 우리 가정경제의 도움닫기였고, 보이지 않은 기초 공사의 초석과 같았다. 어머니의 태같은 태화강을 품은 그 곳에서, 그 해 6월, 남편은 '울산 총각'으로 홀로 살기의 리얼다큐를 접었다. 서울 HD 종합상사의 프렌트 본부로 또 한 번의 회사가 옮겨졌다. 당시 프렌트라는 용어가 낯설었지만, 어떤 제품의 생산공장 라인업 자체를 수출하는 업무였다. 잦았던 해외 출장이 프렌트 수출량을 말해 주었다. 울산광역시에 산업화 역군들의 땀과 인내는 자랑스런 경제 강국의 토대를 마련한다고 믿는다. 

 

 자청해서 내 글을 감수한 '울산 총각'은 우리 가정에 44년째 성실한 항해사이다. 젊었던 날들의 그 회상의 감회가 새롭다면서 옛날을 꺼내 꽃을 피웠다. 기억의 편집을 줄여가며, 이 글을 쓰는 나에겐 선택된 인생의 행운이었다. 힘차게 비상하는 백로의 날갯짓처럼 세계를 향해 뻗어가는, 울산이여 영원하라!  

 

 와싱턴주, 시애틀 사마미쉬에서.

 


 

 

이명숙 (Amy 蛾眉)

•1954년 서울 태생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 졸업

•ㅇㅇ여고 화학교사 역임

•시애틀 거주 (since1995~ 현재)

•서북미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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