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 에세이> ‘답게’ 살고 있는가

가 -가 +sns공유 더보기

노 강 시인
기사입력 2024-03-31 [16:49]

▲ 노 강 시인  © 울산광역매일

 몇 해 전 명도회의 발제자로서 교회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평생을 신앙인답게 살아오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천주교인이 되었지만 교회사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직장이 있었기에 교회사를 공부할 큰 여유는 없었어도 교회사를 알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기에 가장 먼저 시대의 배경을 이해하고자 파리 외방전교회 성직자들의 조국인 프랑스 역사까지 살펴보면서 문화와 관습을 공부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이론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교회사는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꾸준히 공부를 하던 중 조현범 박사의 “조선의 선교사, 선교사의 조선” 책을 읽고 교회사의 가닥을 잡아갈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103위성인 전을 접하게 되었고 순교한 성인들의 이름을 외우면서 교회사에 대한 큰 애정을 갖게 되었다. 또한 파리외방전교회의 “그들이 본 우리”는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귀한 자료였다. 그 중에서도 조선에서 21년을 성직자로 봉사하다 순교하신 다블뤼 성인(1818~1866)의 책을 읽고 정말 큰 감명을 받았다. 다블뤼 성인의 순교 소식에  천국으로 먼저 간 아들을 위하여 성가를 부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어머니의 기록을 보면서 죽음과 부활의 기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교회사 역시 시간의 기록이기에 같은 내용을 보고 해석한 내용이 서로 달라 한 사건에 대한 내용도 여러 권의 책을 비교하면서 읽어야 했다. 교회사에 푹 빠져 있었던 큰 사건이 있었다. 근무하고 있던 건물에 큰불이 났는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연기가 그윽해질 때까지 책을 붙잡고 있다 뒤늦게 대피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교회사를 공부하다 보면 신자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성직자들과 의인들이 참 많다는 걸 느낀다. 그저 성직자답게 주님의 부름에 달려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신 홍 신부. 조셉 빌렘 신부님(1860~1938)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으로 뮈텔 주교의 뜻을 거역하고 형무소 측을 어렵게 설득해 사형을 기다리는 외롭고 처절한 안중근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주시고, 안중근 의사를 위한 미사도 봉헌해 주신 분이다. 이 미사는  안중근 의사가 5년 만에 봉헌한 미사이자, 마지막으로 봉헌한 미사가 되었다. 빌렘 신부는 주교의 명을 어긴 결과로 성무 집행 정지 처분을 받고 한국을 떠난 성직자로 기억될 뿐 교회사의 작은 기록만 남아있다. 성직자로서 안중근 의사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셨던 신부님이시다. 

 

 인간적으로 외로웠지만 답게 그 길을 걸어가신 그런 분들의 시간들을 공부하면서 나의 가슴속에 시리고 아픈 마음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 “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나 스스로 달라진 점은 어떤 상황이건 스스로의 성찰과 식별을 하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만난 성인들의 짧은 인생이 신성한 성찰과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순교였기에. 

 

 식별을 한자로 쓰면, 알 식(識) 자에 분별할 별(別) 자를 쓴다. 아마도 분별을 잘 하라는 뜻인 것 같다. 영어로 쓰면 아이덴티피케이션(identification), 직역하면 신분 증명이고, 거창하게 말하면 자기 정체성의 확인쯤 될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음미할 수 없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결국 흙으로 돌아갈 운명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결국 성찰과 식별이 필요한 시대이다. 식별의 영성은 서구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이 돼왔다. 사막의 교부들은 “분별력을 모든 덕의 여왕”이라고 하였고, 예수회 설립자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식별의 영성’을 강조했다. 각 자 자신의 자리에서 답게 살아간다면 세상이 흐트러지고 혼탁하고 절망스러운 현실일지라도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과연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오늘날 가장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 곳곳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답게 자리를 지키며, 21세기에는 빌렘 신부님과 같은 분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의료계가 혼란스럽다. 의료인인 의사들이 자기 자리를 떠나고 있다. 의사는 환자의 곁에 있을 때 의사답다, 각자 절박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아픈 환자들이 얼마나 불안할까? 제발 의사답게 환자를 지키면서 자기주장을 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환자를 떠나서는 의사도 아니고 어떤 이유도 설득력이 없다.

 

 생명을 가지고 정부도 의사단체도 협상할 수는 없다, 먼저 생명을 치료하는 일이 우선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안한 마음이다.

노 강 시인의 다른기사보기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울산광역매일.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