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논술대회 : 고등학교 논제와 대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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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교수
기사입력 2021-04-22 [16:36]

◆ 논제

 

행동 발현의 관점에서 (가)와 (나)를 요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 (라)를 분석한 후 (가)에 나타난 부르디외의 관점을 반박(또는 지지)하며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제시문>

 

(가) 부르디외는 사회문화현상을 지배-권력관계에서 파악하고 각 계급은 사회 내에서 자신의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는 권력투쟁을 한다고 보았다. 권력투쟁의 수단은 '상징폭력'이다. '상징폭력'은 학교와 언론이 큰 역할을 수행한다. 지배계급의 문화를 교육과 광고, 픽션의 형태로 은연중에 주입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교육과 미디어의 영향과 자신의 부를 바탕으로 자신의 계급을 부지불식간에 특징 지우기 시작하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고 선택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바로 부르디외의 대표적이고 독창적 주제인 '아비투스'가 나온 것이다. 아비투스(habitus)란 어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의 판단이나 행동을 만들어내는 내재된 계급의식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 사회적 계급, 재산의 정도, 교육수준 등에 의해 쌓이고 축적된 생활양식이 어떤 사안에 있어서 우리의 선택이나 행동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부르디외의 사회, 문화적 문제로의 구조적 접근방식은 그동안 사람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경제적, 정치적 잣대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회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의 분석법을 제공하였다. 클래식과 지나간 올드팝을 즐겨 들으면서 특정 상표의 맥주에 집착하고, 프로야구 중계에 열광하면서도 선거 때는 진보정당에 표를 던지고, 환경과 진보적 사상에 대한 독서를 하면서도 패스트푸드나 라면으로 간간히 끼니를 때우는 나의 모든 행동들이 나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닌 내가 살아온 환경과 사회적 계급에 의해 내재화된 아비투스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출전: <구별 짓기> 피에르 부르디외

 

  (나) 그러므로 안락 추구에로는 더 이상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더욱 강한 자극, 즉 쾌락을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소비의 실태가 아닐까? 그렇다면 편리함을 적당하게 줄임으로써 안락을 불완전하고 단속적인 것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그때 발생하는 불편으로 인한 자극을 쾌락화 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쾌락의 증가량에서 안락의 감소량을 뺀 값이 최대치가 되도록 한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에너지나 물질의 소비를 줄여야 하는 시대적 요구와 맞아떨어지고, 나아가서는 인간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이미 안락이 습관화 돼서 그것을 줄이면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중독에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도 이 르포를 시작하게 된 동기 중 하나였다.          출처: <즐거운 불편> 후쿠오카 켄세이

 

  (다)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의 가치를 말해줍니다."

"한 수 위의 품격을 갖췄다. 한 수 위의 삶을 누린다."

" ○○동 □□□□빌 - 딱 76명의 클레오파트라에게 청합니다."

                                                                      출처 : 신문광고

 

  (라) 음식 준비에 최소한 힘을 들이는 게 내 목표이다. 먹을 만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충분히 만들어서 소박하게 식탁에 차리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수프가 준비됐으니 와서 드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중략)-

 나는 사람들을 먹이는 일을 아주 단순화해서, 먹는 시간보다 준비하고 만드는 시간이 덜 걸리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중략)- 

소박한 음식으로 소박하게 사는 데 한결 가까워질 것이다. 

-(중략)-

 소로우는 말하지 않았던가. 단출하게 하라. 욕구를 절제하면 짐이 가벼워질 것이다. 잔치하듯 먹지 말고 금식하듯 먹으라. 닥터 존 암스트롱은 "생일잔치나 혼인 잔치 때일수록 마름을 끄는 식탁은 피하라."라고 했다. 크리스마스, 추수 감사절, 정월 초하루, 부활절 등의 축일이면 주부들은 녹초가 되도록 일하고, 과식한 이들은 배탈로 고생하지만, 우리 부부는 음식을 먹지 않고 물이나 주스만 마시는 것으로 위장과 음식 만드는 사람에게 휴식을 준다. 그런 날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잔칫상에 항의하는 의미로 금식한다.

 

■ 고등학교 대상작 ■ - 자신의 의지 확실히 한 후 행동해야 (□□고등학교 000)

 

  갓난아기가 자라면서 하나씩 하는 행동은 그 아기가 홀로 생각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기를 둘러싼 환경에서의 영향과 자신의 생각 등이 복잡하게 관계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비단 아기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부분의 인간은 그러한 방식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일으키는 환경과 자신의 의지 중에서 어떠한 것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있어 왔다.

 

  환경에서의 영향, 특히 지배계급의 의도에 의해서 더 많은 행동의 발현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 부르디외의 관점은 (가)에서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그래서 부르디외는 인간의 사회문화현상이 사회적으로 지배계급에 의한 상징폭력을 포함해 내재화되고 학습된 조건이 개인의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제시문 (나)에서는 이러한 영향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안락의 습관화로 안락에서보다 더 강한 자극인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만족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발적인 불편의 효과를 강조한다.

 

  (가)에서의 아비투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를 (다)에서 잘 알 수 있다. (다)의 광고들은 광고 기획자가 영향을 받았던 사회 계급이 물질적인 것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 광고 기획자의 의도는 대중에게 전달되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에 의한 행동을 촉구할 것이다. 하지만 (라)에서는 그러한 광고 기획자나 제작자, 지배계급에 의한 의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나)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소박한 음식으로 조금의 불편은 생길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더 편안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즐긴다.

 

  부르디외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지배계급의 의도에 의해서 행동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그러한 의도들을 이겨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력은 다른 어느 것보다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느 것보다 지배계급에 의한 의도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의 의지를 확실히 세워야만 한다.

 

  인간은 그 자신 밖에 있는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행동이 많이 결정된다. 그리고 나쁜 외부적 요소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변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개인이 그러한 의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한다면 인간은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확실히 한 후 행동을 해야만 한다.

 

■ 고등학교 심사평 ■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약이다. 학생들은 그냥 자기 생각을 말하고 제시문을 설명하려 한다. 논술문은 설명문이 아니다. 또한 수필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설명문과 수필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시문을 요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시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리를 할 줄 알아야 논제가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기의 주장을 펼치고 근거와 이유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해석과 정리의 힘'을 보여주는 능력은 논술의 시작이자 끝이라 말할 수 있다.

 

  이번 고등부 대상 작품은 이런 '해석과 정리'의 힘을 잘 보여주는 논술문이라 할 수 있다. '절제된 내용의 (가), (나) 요약, 그 요약을 바탕으로 한 (다), (라) 분석과 자기주장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부르디외는 구별 짓기를 통해 우리사회가 아비투스를 통해 계급의식이 내재화되고 있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광고나 교육 등을 통해 아비투스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부익부 빈인빈이라는 사회 현상을 보며 우리도 거기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사회현상을 올바로 바로잡을 것인가에 대한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도를 갖고 만든 것이 바로 이번 논술문이다. 즉,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인가에 대한 생각 펼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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