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흐르는 아침> 겨울 무쇠막생고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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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석 시인
기사입력 2021-06-10 [17:14]

저물녘 무쇠막사거리에 불똥처럼 진눈깨비 내리고

피딱지 같은 게 얼룩얼룩한 고깃집 간판

서둘러 작업을 마친 허기가 곧 사납게 들이닥치리라

 

붉은 김이 솟는, 뭉텅뭉텅 썰려 나온 생고기들

태양이 나무의 손바닥에 엽록을 채색하듯

시뻘건 화구火口의 고삐를 풀었다 좼다 하며

인부들은 고기에다 불의 영양소를 입힌다

 

단단한 쇠를 달구고 메질하던,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가 배어있는 무쇠막골*

그리하여 생고기보다 연한 쇠, 쇠망치가 먼저 부드러운 식감을 느끼면

거북등만 한 무쇠솥과 농기구들이 도깨비에 홀린 듯 뚝딱뚝딱 만들어져

움막 뒤꼍에 가지런히 놓이던 시절 있었다

 

발톱을 세워 유리창을 할퀴는 습한 기운들

바깥세상을 달구는 눈은 어떤 이기利器를 만들어낼까

누군가에겐 뜨거운 함성이었을 저 문밖에는

추위에 데인 상처가 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쉴 새 없이 두드리는 순백의 망치소리

 

연장통을 두고 온 인부들은 내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대낮의 쇠망치 소리 몸에서 서서히 잦아들 때까지

한강변의 찬 물살이 쇳물처럼 가라앉을 때까지 

 

시커멓게 그을린 어둠 몇 조각 

불판 위의 별똥별로 스러진다

 

 

*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의 옛 이름. 선철을 녹여 농기구 등을

만든 데서 유래.

 

 


 

 

▲ 전장석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이 시에서는 금호동에 있는 고깃집에 든 인부들을 조명하였다. 그들은 쇠망치로 쇠를 벼리는 일을 한다. 그들은 쇠를 벼려 ‘이기利器’를 만들어낸다. 이 공정은 이어서 자연의 작업에 유비된다. 바깥에서는 눈이 내리는데, 거기에서 시적 화자는 “순백의 망치소리”를 듣는다. 이 추위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만, 이 ‘상처’는 쇠가 쇠망치를 맞을수록 강해지듯이 사람들을 강해지도록 하는 자연의 작업인지 모른다고 시적 화자는 생각한다.

 

 두 개의 ‘망치질’을 포갬으로써 하루의 피로를 짊어진 채 고깃집 불판 앞에 앉은 인부들의 삶을 ‘자연의 위대한 작업’이 된다. 인부들이 대낮의 피로를 한 잔 술에 누그러뜨리는 모습을 한강변의 찬 물살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에 유비함으로써 인부들의 삶은 점차 위의를 띠어간다. 마지막 연의 하강 이미지조차 이 흐름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거기서 그는 ‘어둠’을 ‘별’로, 추락하면서 더 화려하게 빛을 내뿜는 ‘별똥별’로 치환한다. 그는 가난하고 못 배운 평범한 사람들도 마지막의 순간에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면 모두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 장삼이사의 사람들에게 확인해주고 싶었다. 

 

전장석 

 

2011년 『시에』 등단

시집 『서울, 딜쿠샤』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한국경제신문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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